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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이상스 번역을 거부하는 욕망의 이름

by 알ㄹr딘 2026. 2. 9.

  주이상스는 정신분석 이론에서 가장 난해하면서도 핵심적인 개념 중 하나로 인간의 쾌락과 욕망 그리고 파괴 충동을 동시에 사유하게 만드는 용어입니다. 이 글에서는 주이상스의 이론적 기원과 프로이트 이론과의 연결 그리고 라캉 이후의 확장된 해석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주이상스 번역을 거부하는 욕망의 이름
주이상스 번역을 거부하는 욕망의 이름

 

주이상스라는 개념과 번역 불가능성의 문제

 

  주이상스는 자크 라캉이 만들어낸 조어 가운데 가장 번역이 어려운 용어로 평가됩니다. 지금까지 희열 향유 즐김 등으로 옮겨져 왔으나 이 번역어들은 주이상스가 지닌 복합적 의미를 온전히 담아내지 못했습니다. 희열은 쾌락의 강도를 강조하지만 고통의 측면을 포착하지 못하며 향유는 소유와 사용의 뉘앙스를 담지만 파괴적 충동을 설명하기에는 부족합니다. 즐김 역시 일상적 의미에 갇혀 주이상스가 지닌 극단성과 위험성을 희석시키는 한계를 지닙니다. 이러한 번역의 어려움은 주이상스가 단순한 감정이나 경험이 아니라 구조적 개념이기 때문에 발생합니다. 주이상스는 상황과 주체의 위치에 따라 형태를 바꾸며 쾌락과 고통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듭니다. 이 점에서 주이상스는 언어로 고정되기를 거부하는 개념이며 번역 불가능성 자체가 이 개념의 본질을 드러낸다고 볼 수 있습니다. 라캉은 주이상스를 쾌락원칙을 넘어서는 무엇으로 설정함으로써 인간이 왜 스스로에게 해로운 선택을 반복하는지를 설명하고자 했습니다. 이는 인간을 합리적 존재로 가정하는 관점에 대한 근본적인 도전이었으며 주이상스는 이 도전의 핵심 개념으로 기능했습니다.

 

프로이트 이론과 주이상스의 구조적 대응

 

  주이상스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이론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프로이트는 1920년에 발표한 쾌락원칙을 넘어서에서 인간에게는 쾌락을 넘어서는 충동이 존재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이를 죽음충동이라고 불렀으며 이 충동이 반복강박이라는 형태로 나타난다고 보았습니다. 반복강박은 고통스러운 경험을 피하지 않고 오히려 되풀이하려는 경향으로 삶을 유지하려는 충동과 파괴하려는 충동이 동시에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후 프로이트는 마조히즘의 경제원칙에서 인간의 근원적 소망을 열반원칙으로 설명했습니다. 이는 모든 긴장과 자극이 사라진 완전한 정지 상태를 향한 갈망을 의미합니다. 자아는 궁극적으로 평화와 무로의 회귀를 욕망하며 이 욕망은 자기파괴적 충동으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프로이트는 이러한 마조히즘이 현실원칙의 요구에 따라 세 단계로 변형된다고 설명했습니다. 가장 원초적인 근원적 마조히즘은 정지와 소멸을 향한 충동이며 여성적 마조히즘은 동일시와 착각의 단계에 머무는 상태입니다. 도덕적 마조히즘은 초자아가 형성된 이후 죄책감과 처벌 욕망으로 나타나는 단계입니다. 라캉은 이 구조를 주이상스 개념으로 재해석했습니다. 근원적 마조히즘은 주이상스의 가장 근본적인 형태로 이해되며 이는 열반원칙과 연결됩니다. 유아기의 여성적 마조히즘은 라캉이 강조한 여성적 주이상스에 해당하며 상징계 이전의 무한한 몰입과 동일시의 상태를 가리킵니다.

 

라캉 이후의 주이상스 구분과 이론적 확장

 

  라캉은 주이상스를 명확하게 단계화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후 학자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이 개념을 정리했습니다. 라캉은 여성적 주이상스의 위험성을 설명하기 위해 감각의 제국을 언급하며 상징계의 억압이 작동하지 않는 주이상스는 자아파괴로 귀결될 수 있음을 경고했습니다. 주이상스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성적 희열이나 즐김으로 경험되는 것은 상징계의 억압 이후에 형성되는 잉여주이상스의 단계입니다. 이 단계에서 주이상스는 결핍과 금지를 전제로 하여 욕망의 형태로 조직됩니다. 반대로 여성적 주이상스로 퇴행할 경우 쾌락과 고통의 구분은 무너지고 주체는 파괴적 몰입에 빠지게 됩니다. 라캉 이후의 이론가들은 이러한 모호성을 각자의 방식으로 체계화했습니다. 후안 다비드 나지오는 근원적 주이상스를 대타자의 주이상스라고 명명하며 주체 이전의 구조적 차원을 강조했습니다. 자크 알랭 밀러는 기표화 이전과 이후 등 여러 단계의 주이상스를 구분하며 하나의 이론적 패러다임을 제시했습니다. 이러한 시도들은 주이상스가 단일한 개념이 아니라 다양한 층위를 지닌 복합적 구조임을 보여줍니다. 주이상스에 가장 가까운 프로이트의 개념은 리비도이지만 리비도가 번역을 거부하듯 주이상스 역시 번역될 수 없는 개념으로 남아 있습니다. 결국 주이상스는 언어로 포획되지 않는 욕망의 핵심을 가리키는 이름이며 인간이 왜 쾌락을 넘어 고통 속으로 나아가는지를 사유하게 만드는 정신분석의 가장 급진적인 개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