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션은 소설을 지칭하는 용어로 널리 사용되어 왔지만 실제로는 문학 창작의 근본 원리를 설명하는 개념이며 이 글에서는 픽션의 어원과 인식론적 기능 그리고 동서양 문학관 속에서 픽션이 어떻게 재해석되었는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픽션의 어원과 문학 창작 원리로서의 의미
픽션이라는 용어는 일반적으로 소설과 동일시되며 산문으로 쓰인 이야기 문학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픽션이라는 개념은 소설이라는 장르를 명확히 규정하는 하위 범주로 보기에는 지나치게 포괄적이고 모호한 성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픽션의 어원은 형성하다라는 의미를 지닌 라틴어 픽티오에서 비롯되었으며 이 어원은 픽션이 단순한 거짓이나 허위가 아니라 만들어지고 구성된 결과물임을 시사합니다. 이러한 어원적 의미에서 보자면 픽션은 역사적 사실과 대비되는 꾸며낸 이야기라는 의미를 넘어서 작가의 상상력과 구성 행위를 통해 형성된 모든 문학적 텍스트를 포괄하는 개념입니다. 오늘날 픽션은 주로 산문 형식의 문학을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되고 있지만 본래의 개념은 운문과 산문을 구분하지 않고 문학 창작 전반을 아우릅니다. 픽션은 장르 명칭이 아니라 문학 텍스트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를 설명하는 창작의 원리이며 허구와 형성이라는 개념을 통해 문학이 현실을 그대로 복제하는 것이 아니라 재구성한다는 점을 드러냅니다. 이 점에서 픽션은 문학의 존재 이유와 기능을 설명하는 핵심 개념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문학 텍스트는 사실의 집합이 아니라 의미를 생산하기 위한 구성물이며 픽션이라는 개념은 이 구성의 과정을 개념화한 용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계 인식의 한계와 픽션의 인식론적 기능
세계 전체는 단일한 인간에 의해 통일적으로 인식되고 형상화되기에는 지나치게 방대하고 복합적인 대상입니다. 만약 한 인간이 세계 전체를 그대로 재현하려 한다면 그 텍스트의 규모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질 것이며 그러한 텍스트는 인간에 의해 쓰일 수도 읽힐 수도 없습니다. 세계와 동일한 크기의 텍스트는 애초에 성립할 수 없으며 이 한계 속에서 문학은 필연적으로 선택과 축소의 방식을 취하게 됩니다. 텍스트는 세계 전체가 아니라 그 일부만을 제시하며 이 일부는 상징이나 알레고리와 같은 문학적 기법을 통해 전체로 확장되어 해석됩니다. 독자는 텍스트에 제시된 부분을 통해 보편적 세계를 상상하고 이해하게 되며 이 과정에서 픽션은 세계 인식을 가능하게 하는 도구로 기능합니다. 또한 세계에 대한 총체적 인식 자체가 가설적 구성물임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그러한 인식을 통해 현실을 이해하고 질서화합니다. 픽션은 바로 이 질서화의 작업을 수행하는 형식입니다. 인식된 세계를 독해 가능한 대상으로 축소하고 구조화하는 과정이 곧 픽션이며 이는 허구라는 이유로 배제되어야 할 요소가 아니라 인간 인식의 필연적 조건입니다. 픽션은 세계를 단순화하고 의미화함으로써 인간이 현실과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돕습니다. 이 점에서 픽션은 현실과 대립하는 개념이 아니라 현실을 이해하기 위한 하나의 인식 방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동서양 문학관 속 픽션의 위상 변화와 근대적 전환
픽션에 대한 인식은 문화권에 따라 크게 달라져 왔습니다. 동양적 문 개념에 따르면 전통적인 서사 장르 가운데 진실하고 가치 있는 것으로 여겨진 것은 역사였습니다. 역사는 실제 왕조나 귀족 영웅과 같은 의미 있는 대상에 대한 기록으로 인식되었으며 진실된 삶을 담아내는 서사로 평가되었습니다. 이에 비해 세간의 소소한 이야기나 꾸며낸 이야기는 역사와 대비되는 소설로 분류되었고 이는 작은 이야기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구분은 단순한 장르 차이가 아니라 실과 허라는 가치 판단의 기준을 포함하고 있었습니다. 허구는 곧 거짓으로 간주되었고 소설은 진실한 문학에 비해 열등한 위치에 놓였습니다. 이러한 인식은 한국 근대문학 초기에도 영향을 미쳐 서구의 노블이 소설로 번역되어 소개되었을 때 많은 지식인들에게 폄하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이 인식에 전환을 가져온 인물이 바로 이광수입니다. 그는 문학이란 하오라는 글에서 소설을 작가의 구성과 상상에 의해 이루어진 장르로 규정했습니다. 작가의 구상력은 독자로 하여금 세계를 직접 대면하게 하는 핵심 원리이며 허구는 진실을 가리는 장벽이 아니라 진실에 도달하게 하는 통로라고 설명했습니다. 이광수로부터 시작된 근대적 문학관은 동양적 의미에서 허로 간주되던 소설과 서구의 픽션 개념을 진실한 문학으로 재정립하는 사상적 전환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이는 허와 실의 대립을 가치 판단의 기준에서 벗어나 창작 원리의 차원으로 이동시킨 결정적 변화였으며 이후 한국 문학이 근대적 서사 형식을 수용하는 토대가 되었습니다. 픽션은 더 이상 거짓의 이름이 아니라 세계를 이해하고 진실을 사유하는 문학의 핵심 개념으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